푸르게 번지는 울음을 가뒀다 갇혀있지 말자고 내뱉은 숨 그 숨이 차가웠다 텁텁하게 내려오는 아침의 빛이 미웠다 우리의 눈꺼풀에 차가운 눈이 앉았다 마지막이라는 건 뭐든지 어색했다 그 눈이 씁쓸했다 이제는 뜨지 않을 보름달 영원이라는 건 없네요 모든 건 일시적이어서 영원이라는 게 사라진 줄도 모른 채 누추한 나를 떠나요 펼쳐진 손은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고...
필름을 되감는다 비어버릴 필름 통을 생각하다 다 감지 못한 필름 속에 빛이 새어들어가 모든 게 풀려버려 어디론가 돌아간다면 나는 며칠이든 쉬고 싶다 그런 기약 없는 날을 갈망한다 아무리 반듯이 울어도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 공간의 시계를 부쉈다 시선을 뭉개며 들었다 우리는 가속할 자신도 돌아갈 자신도 없다는 사실을 걸었던 길이 바스락거리거든 멀어진 파편을 움...
영화를 보자. 지아는 힘차게 말했다. 길에는 눈부신 네온사인 빛 사이에 섞인 캐롤이 적절한 크기의 소리로 일렁거렸다. 어정쩡한 낮의 햇빛과 어울렸다. 나는 목도리 끝의 술을 손가락으로 계속 꼬아댔다. 빨간 실이 정신없이 손가락을 잡아먹다가, 풀렸다가, 다시 잡아먹다가……. 지아는 목도리를 하지 않았다. 어떤 액세서리도 없는 지아의 목이 허전해 보였다. 우리...
붉은 돌담의 눅눅한 능소화 끈적한 길 위를 달리는 버스의 덜컹거림 여름이 오기 전에 내가 죽을 것만 같았어 벽돌 틈새로 스며드는 습한 연기의 구석에서 지나가는 버스가 누군가의 발위를 잘라놓는다 그동안 속삭일게 하늘아 영원의 중심이 어딘지 알고 있니 물어보고 아 그냥 저기 있는 누군가를 밀어버리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고 그러다 잘려버린 누군가의 발위는 다시 모...
웜, 벌레들, 몸속에서 요동치네 벌레들의 주도자는 누구지? 따르자 따르자 빛내자 우리는 이동하며 춤추자 그러나 으스러지지는 말자 춤추며 씻어내며 이야기하자 잠깐 반짝이다 쉽게 관계를 놓아 잃어버리는 그런 존재에 대하여 사랑, 궤도들, 물결을 넘나드네 마치 타들어 갈 듯이 얼어붙는 기분이야 그런존재는 늘 나를 만족하게 해 널 위해 눈알을 불려서 달을 만들었어...
조밀한 초여름 깊어가는 빨강 우린 어떤 봄을 보냈어? 체리가 담긴 유리잔은 스스로 빛을 낼 줄 알지 조밀한 초여름 깊어가는 빨강의 위를 심지로 쓴다면 타들어가는 초여름은 스스로 빛을 낼 줄 알지 이 빛을 다 태우고 난 뒤에는 아른거리는 향기만을 남겨두자 그리곤 물과 섞어버리자 우리 빨강의 결을 목에 조여버리곤 땡볕 아래서 들이키자
K와 했던 그날의 대화를 기억한다. 우리는 꼭 사랑을 해야 한다고, 사랑하는 나날이 얼마나 달콤한 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미친 듯이 떠들어댔다. 옥상에서 멀고 어두컴컴한 바다 위의 다리를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것은, 초점을 집중해보면 흐릿하게 화려한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칙칙한 질문들이 머릿속을 질척였다. ...
어느 날 서로 연애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던 걸 떠올렸다. 너는 애인이 생긴다면 꼭 그 사람의 모든 사랑스러운 부분을 모아서 기억해두었다가 첫 기념일에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거, 미래의 애인에게 약속하는 거야? 음… 그래, 나름 약속이지! 하하. 언제 생기려나? 문득 차오르는 언어들이 생각을 쉴 새 없이 이어나갔다. 네가 환하게 웃을 때 눈꼬리가 얼마나 ...
기억의 형태는 간단하게 두 개로 분류할 수 있다. 텍스트 혹은 이미지. 내가 마음에 드는 기억의 형태는 이미지일 것이다. 어떠한 장면을 마주쳤을 때 문득 정신이 추락하는 듯하면서도 붕 뜬 기분이, 실제로 빛나지 않을 풍경이 반짝거리도록 남아있는 것이 눈시울을 괜스레 서글퍼지게 만들며 평생 간직하고픈 이미지가 주체가 되어서 가끔 자려고 누워있는 밤에 나를 끌...
술잔에 담긴 색을 이룬 액체가 목 너머로 넘어간다. 쓴 술이 오늘따라 참 달게 느껴진다. 집 안이지만 분위기를 이루는 조명 아래에서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미간을 짚은 채 앉아있는, 무표정의 사내. 흘깃 쳐다보는듯한 눈빛.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살짝 차가운 가을바람 사이에는 비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 흐린 조명이 락의 눈동자를 비추면 녀석의 눈이 은은하게 밝...
큰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회색 빛이 도는 흐린 날씨였다. 비가 와서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공기가 차가웠고, 전체적으로 시야가 젖어 있는 기분이었다. 혜주와 나는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느닷없이 싸우기 시작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다신 얼굴 안 볼만큼 심하게 싸웠던 건 알 것같았다. 전혀 자각하지 못했는데 그 날은 혜주의 생일이었나보다. 친구들이...
미나와 나는 같은 초중고를 다녔다. 옛날부터 늘 나랑 붙어 다녔고, 나를 응원해줬다. 우리는 서로의 꿈이 생겼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인문계 고등학교지만, 예체능 관련 지원이 괜찮다기에 같이 1지망란에 쓸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꿈이 배우였다. 연기를 늘 좋아했고, 연기를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연극부 연습이 끝나고도 혼자 시간을 더 할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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